나이듦이 왠만하면 남들에게 감춰야 할 부끄러움인가요? 페이스북과 같은 SNS에서도 “이 노래가 좋다. 아, 이런 말 하면 내 연식이 드러나려나?”라며 ‘아차!’하는 듯 언급하는 글을 제법 자주 봅니다. 저는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왜 그런 말을 할까?’ 글쓴이가 별뜻 없이 내뱉거나 쓰는 이런 류의 말 속에 ‘나이드는 것은 부끄럽고 감춰야 하는 일이야’라는 편견이 숨어 있지는 않은지 저는 생각해 봅니다. 곰곰이 따져 생각하면, 연식 운운하는 소리는 인종 차별이나 남녀 차별적 발언과 진배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흑인이군요?”라고 댓글 달 수 있겠습니까?
돌이켜보면, 저도 20대 시절에 40~50대 부장님들이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를 보며 속으로 코웃음을 쳤던 기억이 납니다. ‘젊은 시절을 함께 한 노래니까 아직도 좋아하나 보군’이라고 생각하기보다 ‘뭐야, 저 촌스럽고 오글거리는 음악은!’이라고 조롱했었지요. 이제 제가 그들의 나이가 되어 20~30대 친구들에게 ‘연식 딱 나오네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제가 얼마나 치기 어렸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나이 먹은 게 부끄러움이 아니듯 나이 젊은 게 자랑은 아니니까요.
하도 연식 운운하는 소리를 여러 번 들으니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속으로 ‘그래, 너는 젊어서 좋겠다. 얼마든지 내 연식을 지적해 주렴’이라고 튕겨 내버리죠. 그러고는 ‘하지만 난 나이들어 좋은 걸!’이라고 뒤따라 내뱉습니다(물론 속으로). 정말입니다. 나이들어서 아주 좋다는 걸 오늘 느꼈거든요.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못사게 했거나 돈이 없어서 못샀던, 소위 키덜트용 장난감 하나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저는 외쳤습니다. “나이들어서 좋구나. 내맘대로 이런 걸 살 수 있으니까!” (위의 사진이 바로 그것!)
누구나 평균 수명을 산다면 인생 전체에서 얻는 경험의 양이나 질은 비슷비슷합니다. 누가 조금 더 일찍 세상에 나와 경험을 축적하기 시작했냐의 차이 밖에는 없습니다. 나중에 나온 자가 먼저 나온 자를 보며 ‘당신의 경험은 구리다’라고 말할 이유도, 권리도 없죠. 더욱이 사람은 자신의 선택으로 세상에 나온 것은 아니니까요.
코미디언 지상렬이 연식 운운하는 젊은이에게 이렇게 말했다죠? “넌 늙어봤냐? 난 젊어봤다!” 참, 시원한 일성입니다. 사람의 존귀한 삶에 전자제품이나 자동차에나 붙일 ‘연식’이라는 단어, 이제는 쓰지 않기를 바랍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