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그 태세를 누그러뜨리지 않으니 화가 나더군요. 저는 “안 한다니까요. 필요 없다구요!”라고 귀찮다는 듯 내뱉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순간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대꾸하더군요. 그 말이 참 ‘걸작’이었습니다.
“와이퍼를 교환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저는 순간 말문이 막혔습니다. 평소 이런 질문에 대답할 말을 미리 준비해 둘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제가 무슨 대답을 할지 몰라 약간 우물거렸는데 그 틈을 비집고 그가 다시 “왜 교환 안 하시나요?”라고 재차 물었습니다. ‘특별한 이유라니? 난 그냥 당신이 귀찮아. 그러니까 사고 싶지 않아!’라는 게 그에게 진짜로 내뱉고 싶은 대답이었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나름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말일 테니까요.
그래도 부아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주유하랴, 결제하랴, 차 안의 자질구레한 휴지를 버리랴, 바쁜 저에게 강매에 가까운 태도로 접근하는 것도 모잘라 ‘안 사는 건 너의 죄야!’라는 식으로 죄책감 유발까지 하다니! ‘그 말 안 했으면 내가 샀을 텐데, 당신이 선을 넘는구나!’ 저는 그의 질문을 무시하고 “네, 전 정말 필요없습니다. 바빠서 가겠습니다.”라고 냉큼 차에 올라타 주유소를 빠르게 빠져 나왔습니다. 리어뷰 미러로 그를 살짝 훔쳐 봤는데, 장사꾼 답게 저에게는 빛의 속도로 관심을 끊고 다른 손님에게 와이퍼 한 쌍을 들고 접근하더군요. 저는 그를 흘끗 보며 "다시는 만나지 맙시다!"라고 차 안에서 외쳤습니다. 마치 소금을 뿌리듯이.
‘구입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를 말해라, 내가 너의 대답을 좀 들어야겠다’ 식으로 손님을 대하는 판매자, 저에게는 아주 성가시면서도 (어떤 의미에서) 매우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본인 딴엔 손님의 구매 결정을 촉발시키는 일종의 ‘치트키’였을지 모르지만, 불쾌한 기분은 텁텁한 음식을 먹은 후의 입맛처럼 아직 남아 있군요.
저도 앞으로 그래볼까 합니다. 클라이언트를 찾아가서 “컨설팅을 받지 않으려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라고 묻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의 대답을 기다려야겠어요. 그러면 클라이언트로부터 어떤 대답이 나올까요?
농담입니다. 저는 절대 그러고 싶지 않네요. 클라이언트를 몰아세우기까지 하면서 일하고 싶지 않거든요. 무엇보다, ‘유정식이란 컨설턴트는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란 마음을 들게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요. ‘컨설팅 안 받으려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라는 궁금증이 간혹 드는 경우가 있지만, 그건 속으로 삭혀야 합니다. 클라이언트가 특별한 이유를 말한다 한들 어디에 써먹으려고요? 그저 “아, 그러시군요. 잘 알겠습니다.”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는 척하고 말 텐데요. 안 그렇습니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