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 번역 스킬을 일일이 언급할 수는 없지만(이미 많은 책들이 나와 있죠) 번역을 잘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만 조언하면 이렇습니다. 저는 번역을 3단계로 나눠 진행합니다. 1단계에서 저는 영어 문장을 가능한 한 직역 수준으로 번역합니다. 우리말이라기엔 조금 어색하더라도 그대로 번역함으로써 일단 처음부터 끝까지 번역 초고를 완료하는 데 힘을 집중하죠. 1단계가 끝나면 약 3~7일 정도 번역 작업을 잊어 버리고 휴식을 취합니다.
2단계부터는 어색한 영어식 표현을 자연스러운 우리말처럼 바꾸기 시작합니다. 흔히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고 말하는데, 바로 이 단계가 창작에 가까운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필요에 따라서는 저자의 문장을 완전히 해체한 다음 ‘나라면 이 의미를 어떤 문장으로 쓸까?’라고 생각하며 새로운 문장을 써내려 가죠. 물론 원래의 의미를 온전히 보전한다는 전제가 있지만, 이렇게 해야 독자들이 우리나라 저자가 쓴 책처럼 원활하게 읽어내려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단계의 성패는 번역가의 ‘국어 실력’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3단계는 ‘독자의 입장’에서 책을 처음부터 읽어 가면서 ‘아, 이 부분은 독자가 좀 헷갈려 하겠는데?’ 혹은 ‘이 부분을 좀더 보강해 설명해야 좋을 것 같은데?’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수정하는 과정입니다. 흔히 ‘옮긴이 주'라고 표기하는 부분들이 이 단계에서 추가되곤 합니다. 저에겐 익숙한 용어라 해도 독자들은 해당 용어를 모를 수도 있고, 미국의 상황이라 미국인들은 추가 설명 없이도 이해하겠지만 국내 독자들은 무슨 말인지 모를 수도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미국에서 인기를 끈 드라마가 사례나 일화로 소개되면, 그게 어떤 드라마인지 짧게 설명을 넣어서 독자의 이해를 돕습니다. 이렇게 추가 정보를 삽입하고 전체적인 ‘퇴고’ 과정을 거침으로써 번역의 최종 원고가 완성됩니다.
가장 만족도가 높은 직업 중 하나가 사진작가인 반면, 가장 만족도가 낮은 직업은 모델이라고 합니다. 사진작가는 모델을 피사체로 대상화하고 모델은 사진작가의 주도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일 뿐 자기 의지를 발현하기는커녕 차단 당하기 때문이죠. 비유하자면, 번역가는 모델과 비슷합니다. 번역의 미덕은 저자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저자의 주제, 문장, 논리 구조, 사례와 본인의 생각이 달라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상당한 스트레스를 유발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내가 그냥 쓰고 말지, 다시는 번역 안 할래!”라고 혼자서 소리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그만큼 번역은 고통스러운 과정입니다. 한 페이지라도 번역해 본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것 같네요. 그러니 영어 좀 한다 해서 번역을 쉽게 접근해서는 안 되죠. 번역서가 저서보다 세 배나 되는 저의 출간물 리스트를 보다가 번역 이야기 좀 해봤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