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마다 CEO의 신년 경영방침이 발표되면 경영기획 부서는 내년도 사업계획을 수립하느라 매우 분주하게 돌아갑니다. 이때 그들은 ‘작년까지 이렇게 되어왔으니 앞으로도 이럴 것이다’라고 말하거나 ‘반드시 이 목표를 무슨 일이 있어도 달성해야 한다’는 행정편의적 사고를 가동합니다. 예측을 한다고는 하지만 사실 이렇게 목표가 정해지죠. 미래의 모습을 다각도로 그려보고 대책을 강구하는 전략적 사고는 전혀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과거의 패턴이 인간의 판단력을 지배하기 때문에 수많은 예측과 예측을 기반으로 한 계획이 번번이 실패하고 마는데요, 이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실험이 있습니다.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에이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는 UN 가맹국 중 아프리카 국가의 비율이 얼마나 될지 묻는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그들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1부터 100까지의 숫자가 적힌 룰렛 게임을 먼저 한 후에 정답을 말하도록 했죠.
그 결과, 참가자가 룰렛 게임에서 10을 찍으면 평균적으로 아프리카 국가의 비율을 25%로, 65를 찍으면 45%로 답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실험은 아프리카 국가 비율과 전혀 관련이 없는 룰렛 게임의 결과가 답변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 줍니다. 심리학에선 이런 현상을 ‘닻효과anchoring effect’라고 부르죠. 요컨대, 룰렛 게임의 결과가 닻이 되어서 답변이 멀리 달아나지 못하도록 작용한다는 뜻입니다.
예측도 이와 동일한 오류를 범하게 합니다. 과거의 추세가 강력하고 무거운 닻이 되어 그 범위 내에서만 미래를 추측하고 사고하도록 만들죠. 예를 들어, 예측 모델이 내년 매출액을 금년보다 10% 성장할 거라 전망한다고 해보세요. 전사 목표와 부문별 목표를 정하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내년도 시장이 몇 가지 이유로 고전을 면치 못하여 오히려 마이너스 2% 성장을 기록하리라는 부정적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겠죠?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근거를 자세히 들어보라며 즉각 반박에 나설 겁니다. 성과 축소처럼 민감한 사안도 없으니까요. 그의 의견이 신빙성이 있다면 10% 성장이 마이너스 2% 성장으로 수정될까요? 아마 그러기 쉽지 않을 겁니다. 예측 모델이 10%를 가리키는데 어찌 그것을 무시하고 마이너스 2%로 고칠 수 있을까요? 그의 의견이 상당히 타당하더라도 그렇게 할 수는 없다면서 10% 성장을 7% 정도로 끌어내리는 것에 만족합니다. 더 이상 이견이 없으면 내년에 잘해보자며 구호를 외치고 회의를 마무리하는 게 전형적인 광경이죠.
예측을 과신하지 마세요. 아니, 예측하지 마세요. 예측이 아니라 시나리오로 미래를 관측하세요. 여러 가지로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케이스별로 대비책을 미리 만들어 두세요. 이것이 바로 시나리오 플래닝을 여러분 개인이나 조직에서 수용하기 전에 가져야 할 마인드입니다. 저의 새책 <시나리오 플래닝 - 불확실한 시대의 성공 전략>이 친절한 가이드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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