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저는 극악 난이도의 학력고사를 치른 탓에 보기좋게 떨어질 줄 알았지만 2지망을 잘 써서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부푼 꿈을 안고 입사한 첫 직장은 IMF 직전에 부도를 맞고 타사에 인수되었지만, 그 덕에 저는 대학 때 동경했던 컨설턴트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인수 합병 과정을 겪은 상사들이 컨설팅 회사로 이직했고 공중에 붕뜬 저에게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죠.
며칠 전 <시나리오 플래닝> 개정판을 낸다는 소식을 구독자 여러분께 드렸는데요, 제가 시나리오 플래닝 전문가로 (조금은) 알려져 있고 그간 시나리오 플래닝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이유 역시 우연이었습니다. 그 운은 남들이 손사레치던 시나리오 플래닝 프로젝트를 엉겹결에 받아서 수행했던 것에서 시작되었으니까요. 왜 저에게 그 일이 주어졌냐고요? 동료 컨설턴트들이 다 프로젝트에 투입돼 있을 때 저는 프로젝트를 막 끝내고 쉬고 있던 차였거든요. 정말 운이 좋았죠?
외국계 컨설팅사를 나와 혈혈단신으로 인퓨처컨설팅이란 회사를 시작했을 때 마침 컨설팅 시장이 활황이라서 자리잡는 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모 온라인 잡지에 글을 기고한 것을 계기로 책 저자로 데뷔할 수 있었고, “너 이거 한 번 강의해 볼래.”라는 누군가의 대타로 강의를 맡게 됐다가 지금은 기업 강사로 ‘약’을 팔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정말 저는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일일이 언급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소소한 운들이 엎어지고 포기하려는 저를 일으켜 세웠으니, 누군가가 저에게 성공의 비결을 혹시라도 묻는다면 당황하며 ‘어버버~’할 수밖에 없습니다.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글쎄요. 하다보니 이렇게 됐죠.”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성공의 대부분은 운에서 비롯된 것이니 소위 '출세'했다고 으스대거나 고개를 빳빳이 들어서는 안 됩니다. 남들을 업신여기거나 탄압해서도 안 됩니다. 특히, 학력고사나 수능시험 잘 봐서 서울대 법대를 나온 이들이 고작 사법고시 잘 치른 행운을 권력 유지하는 데 평생 써먹는 일은 이제는 없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말합니다. 본인의 출세에 좀 겸허해 지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