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이런 말을 왜 꺼내는 걸까? 무척 의아했는데, 계속 듣다 보니 그 이유가 뭔지 알겠더군요. 술집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에 대해 비하하는 거라서 무척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겁니다. 모욕감을 느낄 만큼요. 그녀는 또 이런 말도 하더군요.
'누군가가 이런 발언대에 레즈비언 하나 올려보내야 하는 거 아냐, 라고 말하며 떠들어댔다. 그 옆에 레즈비언이 서 있다는 걸 그들은 알았을까?'
민의가 들끓는 광장에서 소수자들이 소모품처럼 소비되는 것 같아 모욕을 느낀 그녀의 감정, 그리고 소수자에 대한 비하와 차별을 멈춰달라는 그녀의 호소는 그 자체로 온당합니다. 터진 입이라고 소수자를 무시하는 말을 아무 생각없이 내뱉은 자들은 비판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왜 굳이?'라는 물음표를 지울 수는 없더군요. 그 자리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도 그랬을 겁니다. 그 넓은 집회장이 일순간 조용해졌으니까요. 아마 다른 목적으로 열린 집회였다면 '지금 왜 그런 엉뚱한 이야기, 집회 목적에 부합되지 않는 말을 하냐'며 앞으로 나서서 힐난하는 자가 있었겠지만, 다들 너무나 절박한 목적을 가지고 모인 터라 그녀의 발언을 저지하거나 비난하려는 야유는 없었습니다.
수십만 명 앞에서 그렇게 '핀트가 맞지 않는 말', 즉 군중의 보편적 분노와 핀트가 맞지 않는 발언을 한다는 것을 과감한 용기라고 봐야 할까요, 아니면 강직한 소신이라고 봐야 할까요?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어떤 주장이 일반적 상황에서 정당하고 설득력 있다고 해서 언제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특수한 장소와 시간대에서는 그 정당성과 설득력이 떨어지거나 오히려 반감을 살 수가 있죠. 바로 토요일, 그 상황에서 벌어진 그녀의 발언이 그러했습니다. '저러니까 페미는 안 돼.' 누군가가 제 뒤에서 혼잣말처럼 이렇게 말하더군요.
'나'의 주장이 누군가를 설득하고 감화시키려면 주장 자체의 논리를 완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 상황이 지향하는 목적, 맥락, 구성원들의 보편적 감정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매번 따져보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이를 모르고 어떤 자리에서나 항상 발진하거나 심지어 폭주한다면, 미안한 말이지만, '꼴통' 소리를 들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그 주장과 신념이 아릅답다고 해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