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을 쓴 손무는 병법 중에서 가장 저급한 것이 공성(攻城)이라고 말합니다. 성 안의 적을 공격하는 책략인 공성은 엄청난 희생과 실패 확률을 감수해야 합니다. 막대한 여유자금만 믿고 이미 경쟁자가 차지한 영역을 무턱대고 덤비는 일은 공성에 해당하는데, 바로 제록스가 택한 전략이 공성이었던 겁니다.
<손자병법>의 수많은 지혜 중 하나만 고르라면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승리 모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싸우지 않고 적을 온전히 이기는 가치가 <손자병법>의 최고 지향점이죠. 그러려면 지승(知勝), 전승(戰勝), 선승(先勝)의 방법을 써야 합니다. 지승은 경쟁의 상황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이긴다는 것이며, 전승은 전쟁에서 싸워 이긴다는 것이며, 선승은 싸우기 전에 이길 수 있는 상황을 먼저 만들어 놓고 이긴다는 뜻입니다.
<손자병법>은 ‘집중(集中)’의 가치를 역설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큰 고전입니다. 군사전략가인 클라우제비츠는 “전략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간단한 준칙은 병력 집중이다. 우리는 이 원칙을 엄격히 따르고, 믿을 만한 행동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죠. 병력을 분산시키면 전선이 길게 형성되고 상대방이 공격하기 좋은 허점이 드러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 분야에 문어발을 뻗치거나 모두를 만족시키려고 노력한다면 이도저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손자병법>은 경쟁이 존재하는 영역이면 어디든지 적용할 수 있는 지혜를 담고 있는데요, 경쟁 자체를 최고의 목적으로 두지는 않습니다. 손무는 경쟁을 질질 끌지 말 것, 전쟁의 폐해를 항상 염두에 둘 것, 모든 결정은 이성적으로 판단한 후 내릴 것, 늘 차가운 머리를 유지할 것, 목숨 걸고 싸우려 들지 말 것을 충고하니까요.
요즘 정치인 중 하나가 단 며칠 만에 말바꾸기를 수도 없이 시전하면서 어설프게 정치공학을 구사하는 모양인데요, 그런 얕은 수를 쓰기 전에 몇 시간만이라도 <손자병법>을 정독하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물론 카메라를 의식하며 고뇌에 잠긴 듯 읽는 흉내만 낼 것이 뻔하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