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당시 블록버스터의 CEO였던 존 안티오코(John Antioco)는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넷플릭스의 위협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죠. 그는 오프라인의 강점을 살리면서 온라인으로 확장하는 '블록버스터 토탈 액세스(Blockbuster Total Access)'라는 강력한 전략을 실행했습니다. 고객이 온라인으로 DVD를 주문하고, 다 본 DVD를 오프라인 매장에 반납하면 즉시 무료로 새 영화를 빌려주는 서비스였습니다.
이 전략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넷플릭스 가입자들이 블록버스터로 갈아타기 시작했고, 넷플릭스의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조차 당시 "우리는 정말 위기였다"고 회고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블록버스터는 왜 망했을까요? 문제는 전략이 아니라 '주주와의 갈등'이었습니다. '토탈 액세스' 전략을 실행하고 연체료를 폐지하는 과정에서 단기적으로 막대한 비용이 들었는데요, 이때 '기업 사냥꾼'으로 불리는 행동주의 투자자 칼 아이칸(Carl Icahn)이 개입합니다. 그는 "왜 쓸데없는 곳에 돈을 써서 수익을 갉아먹느냐"며 당장 배당금을 늘리고 비용을 줄이라고 압박했죠
결국 이사회 싸움에서 밀려난 존 안티오코는 2007년에 회사를 떠났습니다. 칼 아이칸이 지지한 후임 CEO 제임스 키스(James Keyes)는 오자마자 안티오코의 온라인 혁신 전략을 모두 폐기하고, 다시 매장 중심의 수익화 모델(가격을 올리고 연체료를 부활시키는 등)로 회귀했습니다. 넷플릭스는 반사이익을 얻어 기사회생했고 3년 뒤 블록버스터는 파산했습니다.
블록버스터가 망한 진짜 이유는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가 아니라, "장기 혁신 전략이 단기 이익을 좇는 주주의 탐욕과 내부 정치로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블록버스터처럼 억울한 경우는 많은데요,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 "코닥(Kodak)은 디지털카메라를 무시해서 망했다?"
실제로는 코닥이 디지털카메라를 발명했고, 시장 점유율 1위도 했음. 필름 현상이라는 수익 모델이 사라진 게 망한 이유
- "제록스(Xerox)는 멍청해서 GUI 기술을 애플에 뺏겼다?"
실제로는 애플이 정당한 대가(주식 10만주)를 지불하고 이루어진 비즈니스 거래였고, 제록스는 애플 주가의 폭등으로 17배의 시세 차익을 거둠
이처럼 우리가 아는 경영 사례는 사실과 다를 때가 많습니다. 좋은 스토리는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고 행동을 유도하는 힘이 있지만, 그것이 현실을 왜곡하면 엉뚱한 교훈을 얻어 낭떠러지로 향하게 됩니다. '그럴싸한 이야기'가 주는 1차원적 재미에 취하지 말고 다소 복잡해 보이는 맥락(Context)을 파고들기 바랍니다. 이런 노력이조직 내에 만연한 고정관념을 깨고, 현상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비판적 사고의 근육을 키워줄 것입니다.
함께 고민하면 답은 더 가까이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