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이런 파국적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조짐을 감지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국제 정세이니 어쩔 수 없다, 정부가 알아서 대처해 주겠지라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만 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 전략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위에서 제시한 시나리오 단계에 따라 명확한 우선순위를 지닌 대응 전략을 실행해야 하죠.
만약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리더라면, 초연결된 글로벌 공급망과 막대한 에너지 소비라는 약점을 방어하기 위해 단계별로 비상 대응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가장 먼저(초기 징후 발생 시), 네온과 크립톤 등 핵심 특수가스의 재고를 6개월에서 1년 치 이상 선제적으로 비축하고, 중동과 러시아를 우회하는 미주·유럽발 장기 공급망을 즉각 확보해야 합니다.
그다음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으로 위기가 고조되는 시점에는 해상 운송을 대체할 반도체 전용 항공 화물선 물류망을 선점하고, 글로벌 IT 수요 급감에 대비해 레거시 공정을 줄이고 고부가가치 AI 메모리 위주로 탄력적인 생산 믹스 전환을 단행해야 합니다.
최후의 전시 상황이 도래하면, 물리적·사이버 테러에 대비한 공장 보안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미국의 강력한 수출 통제(EAR)를 100% 준수하여 미국 주도의 전시 공급망 내에 안전하게 편입하는 것을 최우선 생존 전략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경제의 주요 축 중 하나인 자동차 산업이라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국내 최대의 자동차 기업인 현대자동차의 상황은 반도체보다 더 위중합니다. 부피가 큰 자동차는 항공 물류 대체가 사실상 불가능해 해상 물류 마비와 유가 폭등에 직격탄을 맞기 때문이죠.
따라서 최우선적으로(초기 징후 발생 시), 와이어링 하네스 등 핵심 부품의 안전 재고를 즉시 확보하고, 수에즈 및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할 아프리카 희망봉 노선과 자동차 운반선(PCTC)의 선복량을 입도선매해 물류 리스크를 분산해야 합니다.
이후 해협이 봉쇄되고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를 돌파하는 카플레이션(Carflation)이 발생하면, 내연기관차 수요가 소멸할 것에 대비해 즉시 초고효율 하이브리드(HEV)와 가성비 소형 전기차 위주로 전 세계 공장의 생산 라인을 전면 재조정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소비 시장 자체가 붕괴하는 최악의 확전기에는, 민수용 신차 투자와 생산을 최소화하고 군용 전술 차량 및 무인 모빌리티 등 방산(B2G) 분야로 발 빠르게 피벗(Pivot)하여 기나긴 전시 불황을 버텨낼 현금 흐름을 창출해야 합니다. 물론 이 상황까지 이르지 않으면 가장 좋겠지만 말이죠.
'미국의 이란 침공과 세계대전급 확산'이라는 와일드 카드는 그 누구도 원치 않는 최악의 미래입니다. 그러나 막연히 위기가 비껴가기만을 바라는 희망은 결코 전략이 될 수 없죠. 최악의 상황을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직시하고, 위기의 진행 단계에 맞춰 기업과 국가의 피해를 최소화할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선제적으로 마련하는 것. 그것이 지금과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에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하고 책임감 있는 최선의 자세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