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역할 과부하보다 더 해로운 것은 역할 모호성이었습니다. 자신에게 무엇이 기대되는지, 어디까지가 자기 책임인지, 어떤 기준으로 평가받는지를 모르는 상태입니다. 이런 모호함은 직무만족, 몰입, 조직몰입뿐 아니라 업무성과와 동료를 돕는 행동까지 떨어뜨리는 것과 관련된다는 게 연구자들의 결론입니다.
일이 많아도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가 분명하면 직원들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반면, 일이 많지 않아도 매번 “이게 내 일인가?”, “어디까지 해야 하나?”, “팀장님이 원하는 수준이 뭘까?”를 추측해야 한다면 일 하나를 할 때마다 보이지 않는 의사결정 비용을 지불해야 하죠. 이것은 꽤나 큰 스트레스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역할 모호성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역할 갈등입니다. 예를 들어 팀장 A는 “고객 만족이 최우선”이라고 말하는데 임원 B는 “고객 한 명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쓰지 말라”고 요구합니다. 혹은 “혁신적으로 해라”면서 동시에 “실수는 절대 하지 마라”고 하죠. 이 연구에서 이런 역할 갈등은 번아웃, 심리적 고통, 이직 의도와 강하게 관련됐습니다.
놀랍게도 역할 갈등은 업무 성과와 뚜렷한 관련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즉, 역할 갈등이 커질수록 업무 성과가 떨어진다는 관계는 나타나지 않은 것이죠. 역할 갈등이 발생해도 직원들은 어떻게든 성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일 겁니다. 바로 이것이 관리자를 속입니다. 성과가 나오니 역할 갈등 같은 문제가 없는 줄 아는 것이죠. 하지만 직원은 '이렇게는 더 이상 못 살겠다'라고 의욕을 상실한 상태일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힘듭니다"라고 말할 때 바로 업무를 경감시키는 조치부터 해서는 안 됩니다. 스트레스의 종류를 먼저 파악해야 하죠.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명확하나?” (역할 모호성)
“서로 충돌하는 요구를 받고 있나?” (역할 갈등)
“주어진 시간과 자원으로 이 일을 해낼 수 있나?” (역할 과부하)
이 세 질문을 잘 던지고 답변을 경청하면 스트레스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상당 부분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에 따라 처방 또한 달라야겠죠. 역할이 모호하다면 기대와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하고, 요구가 충돌한다면 직원에게 알아서 조정하라고 할 게 아니라 리더가 우선순위를 정해줘야 합니다. 정말 일이 너무 많다면 그제야 업무를 줄이거나 그만둘 일을 결정해야 하죠.
지쳐서 힘들어하는 직원에게는 일을 줄여주지 마세요. 먼저 위의 세 가지 질문을 던져 보고 나서 처방을 결정하세요. 원인 진단도 안 하고 업무 경감 같은 처방을 곧바로 내리는 우를 범하지 말기 바랍니다. (끝)
*참고논문
Sawhney, G., McCord, M. A., Cunningham, A., Cook, P., Adjei, K., & Flinn, T. (2026). A meta-analytic review of 60 years of role stressor research. Journal of Vocational Behavior, 167, 104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