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CEO와 만난 자리에서 저는 인텔의 CEO였던(지금은 세상을 떠난) 앤디 그로브의 책 <하이 아웃풋 매니지먼트>란 책을 읽어 보라고 권했습니다.
“그 책을 제가 지금 번역 중입니다. 출판되면 한번 읽어 보십시오. 지금 고민하시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겁니다.”
그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그 책에 녹아 있기에 권했던 겁니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이랬습니다.
“그 책이 언제 나온 거죠? 좋은 책인 것은 알지만 나온 지 20년 이상 된 책인데, 좀 그렇지 않나요?”
그는 최신 테블릿 PC를 쓰다가 5.25인치 디스켓을 꽂아 부팅시키는 그 옛날 PC를, 업무용으로 사용하라는 말을 들은 사람처럼 저를 쳐다봤습니다. 고리짝같은 책이 무슨 도움이 되겠냐는 표정으로 말이죠. 그 시간 동안 경영의 트렌드가 여러 번 바뀌었고, 수많은 경영 기법들이 탄생했으며, 그간 숱한 기업들이 흥망을 거듭했으니 오래 전에 초판이 나온 이 책에서 배울 것이 있겠냐고 의심이 드는 건 충분히 이해할만 했습니다.
저는 “인텔을 지금의 위상으로 끌어올리는 데 지대한 역할을 수행한 사람이니 그의 경영철학을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라고 대답했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책상 위에는 읽고 있는 것이 분명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16세기에 나온 책은 읽으면서 왜 ‘이십 몇 년밖에 안 된 책’에는 의심을 하는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경영을 매우 ‘트렌디’한 것으로 착각합니다. 기업이 만들어내는 제품이 발전을 거듭하고, 기술이 고도화되며, 새로운 개념의 제품들이 시장을 뒤바꿔 놓는 일이 자주 발생하다 보니 기업 경영 역시 그러해야 한다고 간주하죠.
클라이언트들이 내게 컨설팅과 강의를 의뢰하면서 ‘최신 사례’를 강조하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고민하는 주제와 꼭 맞는 예전 사례를 알려주면 “그건 너무 옛날 거잖아요. 최신 사례 없나요?” 혹은 “그 사례는 이미 알고 있어요. 최근에 발견한 사례 없나요?”라며 실망하는 눈치죠. 저라고 해서 내밀한 사례를 알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게다가 외부에 발설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되니 곤혹스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경영의 본질적 고민은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습니다. 사례가 구식이라고 해서 그때의 고민까지 구식은 아니죠. 최신 사례와 최신 이론만 고집하지 마세요. 기본을 다지지 않은 상태에서 수집된, 그런 최신의 것들은 수명이 고작 1~2년에 불과합니다. 경영에도 고전이 있습니다. 고전 한두 권 찾아 읽는 시간을 갖기 바랍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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