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초심을 잃었군.”이라고 말하는 것은 부당하기 그지없습니다. 경험을 통해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치 않은지 구별할 수 있게 됐고, 어떤 일이 힘을 집중해야 하고 어떤 일은 대충 넘어가도 대세에 지장이 없는지 파악하게 된 것 뿐이니까요. 게을러진 게 아니라 지혜로워진 것이니까요.
신입 의사는 환자 한 명을 보는데 1시간이 걸릴지 모릅니다. 실수할가 봐 모든 증상을 꼼꼼히 체크하고, 가능한 모든 검사를 고려합니다. 반면 경험 많은 의사는 5~10분 만에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핵심 증상을 바로 파악하고,필요한 검사만 선별해서 시행합니다. 누가 더 좋은 의사일까요? 여러분은 경험 많은 의사에게 “초심을 잃었네.”라고 말할 수 있나요?
사실, 진정한 의미의 초심은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을 뜻하지 않습니다. 초심이란 처음에 가졌던 순수한 동기, 그 일을 시작하게 만든 본질적인 이유를 의미합니다. 의사의 경우, 처음 의대에 입학했을 때 그가 가진 마음은 “고통 받는 사람들을 치료하고 싶다"는 순수한 동기였을 겁니다. 5~10분만에 진단을 끝내며 겉으로는 ‘기계적’으로 연달아 환자들을 진료하는 의사라 해도 그 동기를 유지한다면 그는 초심을 지니고 있는 것이죠. 그 동기를 실현하는 방식이나 도구가 과거에 비해 더 세련되고 더 효과적으로 바뀐 것뿐입니다.
일하는 근본 목적을 명심하며 그걸 실천한다면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은 초심을 잃은 게 아니라 초심을 더 잘 실현하는 것이겠죠. 결국 ‘초심을 잃었다’ 여부를 판단하는 주체는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초심을 잃었다는 말을 듣는다면 본인이 정말이 게을러진 것인지, 아니면 보다 스마트해졌는지 판단해 보세요. 이건 본인만 판단할 수 있는 질문인데요, 만일 후자라면 위축될 필요 없습니다. 제가 친구에게 그랬듯이 “그것은 당신 생각이고!”라고 대꾸하면 그만입니다.
이 경영일기 역시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최소 2시간 가량 걸려 썼지만, 지금은 AI도구의 도움을 받아 작성 시간을 30분 이내로 크게 단축시켰습니다. 제가 초심을 잃은 걸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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