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굶주린 멧돼지' 시나리오입니다. 해협 봉쇄 등으로 글로벌 곡물 가격이 사상 최고치로 폭등하지만, 다행히 국내 소비 심리는 꺾이지 않아 판가 인상이 어느 정도 수용되는 상황입니다.
넷째, '디지털 빙하기의 돼지' 시나리오입니다. 곡물가 폭등으로 사료 수급이 마비되고, 국내 소비 심리마저 꽁꽁 얼어붙어 기존의 생육 판매 방식으로는 사업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최악의 상황이죠.
제가 D사의 CEO라면 4개의 시나리오에 맞춰 이렇게 대응 전략을 준비할 겁니다(D사의 내부 사정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상상에 의해 도출한 전략입니다).
'풍요로운 황금 돼지' 시나리오에서는 무항생제 등 초프리미엄 브랜드를 강화하고 자사몰(D2C) 중심의 판매로 이익을 극대화해야 합니다. 반면 '모래 바람 속의 돼지' 상황에서는 대형 양판점 중심의 박리다매 전략과 철저한 에너지 효율화로 캐시카우를 방어하는 것이 핵심이 되어야 하죠.
'굶주린 멧돼지' 시나리오가 닥치면 브라질 등으로 원재료 소싱 국가를 다변화하고 초고효율 사료를 개발하여 원가 폭등을 방어해야 합니다. 최악의 시나리오인 '디지털 빙하기의 돼지' 시나리오에서는 기존의 생육 중심 포트폴리오를 과감히 축소하고, 식물성 대체 단백질 개발에 사활을 걸며 B2G(군납, 공공 급식) 시장으로 피신하는 패러다임 시프트가 필요합니다.
물론, 어떤 시나리오가 펼쳐지더라도 반드시 실행해야 할 공통 전략이 있는데요, 지정학적 리스크에 상시 대응하기 위해 '글로벌 원자재 헤지(Hedge) 전담 부서'를 신설하고 데이터 기반의 운영 계획을 고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정사실로 다가온 고유가와 소비 침체 트렌드에 대응하려면 태양광 설비를 확충하여 에너지를 자체 조달하고, 고기가 아닌 육류 부산물을 활용한 저가형 간편식(HMR) 라인업을 선제적으로 구축해 두는 게 좋을 겁니다.
"우리는 내수 기업이니까 나라 밖 사정은 잘 몰라도 돼" 혹은 "중동 전쟁이 우리나라에서 돼지고기 파는 데 무슨 큰 영향이 있겠어?"라고 안일하게 치부해 버린다면, 다가오는 거대한 위기의 해일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내수 기업일수록 보이지 않는 글로벌 공급망의 나비효과를 경계하고 환경의 급변에 기민하게 대응할 체력을 길러야 합니다.
경영자의 직관이나 막연한 희망이 아닌, 첨단 AI의 도움을 받아 방대한 환경 데이터를 분석하고 항상 깨어있는 시나리오 플래닝을 수행하는 것만이 불확실성의 시대를 건너는 내수 기업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