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 "심사숙고해서 결정하라"는 말을 어렸을 때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왔을 겁니다. 경영학에서도 마찬가지죠. 중대한 결정일수록 충분한 시간을 두고, 가능한 모든 옵션을 나열한 뒤 냉철하게 이성적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많은 이들이 조언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뮌헨 루트비히 막시밀리안 대학교(LMU)의 우베 순데(Uwe Sunde) 교수 연구팀은 인간이 내리는 가장 복잡하고 심오한 결정 중 하나인 '프로 체스 선수의 경기'를 분석했습니다. 체스 토너먼트는 의사결정을 연구하기에 완벽한 실험실입니다. 제한된 시간 내에 결정을 내려야 하고, 강력한 인공지능(AI) 체스 엔진을 통해 인간이 둔 수가 최적의 수와 얼마나 일치하는지 '결정의 질'을 아주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죠.
결과는 오랜 통념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연구진은 "더 빠른 결정이 더 높은 질의 결정을 만들어낸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심지어 계산의 복잡성이나 대안들 사이의 미세한 차이, 시간적 압박 등의 변수를 모두 고려하더라도 결과는 같았죠. 오히려 의사결정에 쏟은 시간과 결정의 질 사이에는 '강력한 음의 상관관계(negative association)'가 나타났습니다. 즉, 오래 고민할수록 오히려 질 낮은 악수를 둔다는 뜻이죠.
왜 그럴까요? 복잡한 상황일수록 모든 변수를 분석하고자 하는 노력은 우리의 뇌에 심각한 과부하를 일으킵니다. 반면, 경험이 풍부한 사람의 뇌는 '패턴 인식(Pattern Recognition)'을 활용하죠. 과거에 겪었던 수많은 상황의 빅데이터를 순식간에 매칭하여 최적의 답을 직관적으로 도출해 내는 것입니다. 즉, 직관은 '대충 감으로 찍는 것'이 아닙니다. 이성적인 분석이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처리되는 고도의 무의식적 연산 과정이죠.
우리는 흔히 "선택을 위한 정보가 더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결정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는 것에 불과할 때가 많습니다. 이미 충분한 경험과 정보가 있음에도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분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용기가 부족해서입니다. 이런 용기 부족이 오히려 의사결정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것이 이 연구의 시사점입니다.
혹시 여러분에게 계속 미루고 있는 결정 사안이 있다면, 지금 바로 여러분의 직관이 가리키는 대로 결론을 내려 보세요. 완벽한 결정을 내리겠다는 '분석의 마비(Analysis Paralysis)'에서 벗어나 실행의 속도를 극적으로 높일 수 있을 겁니다. 고민할 에너지를 아껴서 내린 결정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훨씬 현명합니다. 심사숙고가 좋은 결정을 가져다 준다는 믿음을 옆으로 제껴놓기 바랍니다. (끝)
*참고논문 Strittmatter, A., Sunde, U., & Zegners, D. (2026). Speed and quality of complex strategic decision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https://doi.org/10.1073/pnas.2531472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