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일을 미루는 자신을 책망합니다. ‘나는 왜 이렇게 의지가 약할까?’ 여러분도 이럴 텐데요, 사실 의지의 문제가 아닐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일을 미루는 행동은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케임브리지대 사회과학자 이타마르 샤츠는 미루기를 단순한 게으름이나 일정관리 실패로 보지 않습니다. 그는 미루는 행동이 당장의 불편을 피하려는 마음과 먼 미래보다 눈앞의 만족을 중시하는 성향이 충돌한 결과라고 말합니다. 그는 이런 원인을 걱정형, 비관형, 완벽주의형, 몽상형, 지그재그형, 반항형, 스릴추구형, 쾌락형, 번아웃형의 아홉 가지로 나눕니다.
이유가 이렇게 여러 가지인데, 미루는 행동을 교정하려는 처방을 아무렇게나 적용하면 곤란합니다. 완벽주의형 직원에게 “좀 더 긴장하세요”라고 말하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만 커져서 더 미루고 말 겁니다. 번아웃형 직원에게 생산성 앱을 권하면 이미 방전된 사람에게 더 빨리 뛰라고 재촉하는 셈이니 화만 돋구는 꼴이겠죠. 반항형 직원에게 지시와 감시를 강화하면 그는 오히려 일을 미루는 방식으로 빼앗긴 통제감을 되찾으려 할 겁니다.
가령 보고서 첫 문장을 며칠째 쓰지 못하는 직원이 있는데, 그가 흠잡힐 곳이 없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강요하는 완벽주의형이라고 해보세요. 그러면 그에게 "마감을 지켜라!"라고 핀단을 주기보다는 “오늘은 엉성한 초안만 제출해도 된다”고 허락해야 합니다. 완성도를 낮추라는 뜻이 아니고 완성도를 판단하는 시점을 뒤로 미루라는 뜻이죠. 초안 작성과 결과 평가를 분리하면 일을 시작할 때 드는 에너지의 문턱이 크게 낮아집니다.
어떤 직원은 자기가 자율성을 침해받았다고 느끼면서 '일을 최대한 미룰 테다!'라고 마음먹은 반항형일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왜 하지 않았냐고 추궁하기보다 “방법과 순서는 자네가 정해봐"라고 선택권을 주는 게 효과적입니다. 수행 방식에 대한 통제권을 주면 그가 저항할 이유가 줄 테니까요.
'미루기의 9가지 유형'은 혈액형이나 MBTI처럼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 여러 유형을 왔다 갔다 할 수 있죠. 따라서 상대방의 미루는 행동을 고치려면 그가 무엇 때문에 일을 미루는지 살피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미루는 습관을 고치려고 할 때도 현재 자신이 9가지 유형 중 무엇에 해당하는지 먼저 가늠해야 합니다. 진단 없이 처방하는 오류를 범하지 마세요.
오늘은 여러분이 미뤄둔 일 하나를 떠올리고 “나는 이 일을 왜 피하고 있는가?”라고 질문하면서 9가지 유형 중 무엇인지 진단해 보세요. 미루는 습관을 이겨내는 길은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것보다 본인이 무엇 때문에 회피하는지 먼저 알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