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은 도로, 건물, 항만 등 사회 기반 시설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할 뿐만 아니라 대규모 인명 피해를 야기시키는 자연재해이다. 그러므로 단 몇 분이라도 지진 발생을 앞서 경고할 수 있다면 적어도 인명 손실만큼은 지금보다 훨씬 경감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지진이 언제 어디서 발생하는지를 예측하기 위해 지금껏 막대한 자금과 연구인력을 쏟아 붓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만한 지진 예보 시스템은 구축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태풍, 집중호우, 폭설 등의 기상 재해는 100% 완벽한 수준은 아니지만 상당히 정확한 예보가 가능하고 며칠 앞까지 내다볼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런데 지진은 왜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일까?
1915년 지구물리학자인 알프레도 베게너(Alfredo Wegener)가 대륙이동설이란 가설을 제안함에 따라 발전된 이론인 ‘판(板)구조론’에 의하면, 지구의 지각은 여러 개의 판으로 나뉘어 있고 각 판은 지구 내부의 맨틀이라고 불리는 반(半)고체 상태의 물질 위를 떠다닌다. 대류 작용으로 인해 뜨거운 국물(맨틀)을 떠다니는 판들은 서로 밀고 밀리다가 어떨 때는 정면으로 충돌하여 맞물리기도 한다. 이 때 서로 맞물리게 된 두 개의 판은 마찰력 때문에 서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에 이르게 되면 미끄러지기 시작하면서 움직이지 못했던 동안 축적됐던 에너지를 한꺼번에 발산한다. 이것이 지진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이다.
어찌 보면 단순한 메커니즘임에도 불구하고 지진 예측이 아직까지 불가능한 이유는 판 구조의 복잡성 때문이다. 각 판은 수백 수천 종의 바위로 구성되어 있는데, 어떤 바위는 무르고 어떤 바위는 단단해서 마찰력의 크기가 제각각이다. 똑같은 스트레스를 가해도 쉽게 미끄러지는 바위가 있는가 하면 꿈쩍거리지 않고 그 힘을 내부에 축적하는 바위가 있다. 이런 각양각색의 바위들이 지각의 여러 단층에 복잡한 패턴으로 퍼져 있기 때문에 쉽게 지진의 발생을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다.
퍼 백(Per Bak)과 차오 탕(Chao Tang)은 두 개의 나무판과 용수철로 연결된 나무토막을 가지고 지진의 발생 원리를 컴퓨터로 시뮬레이션(이 모델은 ‘버리지-크노프의 지진모델’로 불린다)해 보기로 했다. 이 때의 나무판은 지각판을 의미하는 것이고 나무토막들은 두 개의 판 사이에 맞물려진 바위들로 보면 된다.
두 개의 판을 무작위적으로 움직이게 조작하면 각 나무토막들은 마찰력이 미치는 수준까지는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미끄러지기 시작하는데, 서로 용수철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움직임이 다른 여러 나무토막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극히 단순화시킨 모델이지만, 지진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모델이다.
백과 탕은 가상의 나무토막 수백만 개를 대상으로 여러 차례의 컴퓨터 모의 실험을 거치면서, 어떨 때는 나무토막 전체가 한꺼번에 움직이기도 하고(대형 지진) 반대로 어떨 때는 몇 개의 나무토막만 미끄러지다가 마는 경우(소형 지진)를 목격하였다. 그러나 나무토막들이 매 실험마다 평균적으로 얼마만큼 움직일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무작위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무토막 실험을 통해 수많은 바위 중에서 어느 것이 최초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는지에 따라 대규모 지진과 작은 지진의 여부가 결정되며, 대형 지진이라고 해서 특별한 원인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추정하였다. 이 때문에 지진은 예측 불가능하고 사전에 아무런 경고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즉 지진의 크기는 최초에 어떤 바위가 어느 만큼 미끄러졌는지, 또 그 미끄러진 바위가 다른 바위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쳤는지 등 미세한 차이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연구자들은 나무토막들이 서로 용수철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무토막들처럼 단층의 바위들은 복잡한 상호작용의 그물망, 즉 네트워크 위에 놓여져 있다. 하나의 바위가 미끄러지면 그것은 인접한 여러 개의 바위에 영향을 미치고 바위들의 성질에 따라 그 움직임이 판 전체로 확산되거나 혹은 흡수되거나 하는 것이다. 바위들 간의 상호작용이 강할수록 미세한 차이에 의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이렇게 과도하게 민감한 상태를 ‘임계상태(Critical State)’라고 한다.
임계상태에서는 작은 차이가 큰 변동을 일으킬 수 있다. 문제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 작은 차이가 큰 변동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것이다. 모래더미에 깃발을 꽂아 놓고 상대방의 모래를 뺏어오는 게임을 하다 보면, 가만히 있던 모래 더미가 손 끝의 미세한 움직임 때문에 갑자기 무너져 내리면서 꽂혀 있던 깃발이 쓰러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때의 모래 더미가 임계상태에 놓여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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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7월 5일에 난카이 대지진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입니다. 오해할까 덧붙인다면, ‘절대 난카이 대지진은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확률적으로 그런 규모의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지만, 언제, 어디서, 얼마만큼의 규모로 발생할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당연히 조심은 해야겠으나 특정 시점을 말하는 자들에게 현혹돼서는 안 됩니다. 불확실한 것을 확실하다고 말하는 자들의 혀를 조심하세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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