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년 일본 아오모리현 히로사키에 주둔하던 일본군은 러시아와의 전쟁을 대비해 혹한기 산악행군 가능성을 시험하고자 핫코다 산 탐사대를 파견했습니다. 목표는 겨울철 산악 이동 능력을 확인하고 필요한 장비와 기술을 사전에 점검하는 것이었죠.
31연대 후쿠시마 대위가 이끄는 27명 규모의 탐사대는 지역 안내원을 동행해 무사히 임무를 마쳤습니다. 반면 5연대 칸나리 대위의 탐사대는 출발 전부터 불안 요소가 많았습니다. 칸나리 대위는 소대 규모와 안내원 동행을 주장했지만, 대대장 야마구치는 31연대보다 짧은 거리라는 이유로 중대 규모(210명)로 확대했고, 안내원 동행도 거부했습니다. 대대장은 탐사대 지휘관이 아님에도 행군에 동행하며 지휘에 간섭했고, 대위급 지휘관들이 제각기 명령을 내려 지휘 체계가 붕괴되고 말았죠.
출발 직후부터 눈보라와 낮은 기온으로 행군은 느려졌고, 병력과 보급품이 많아 속도는 더 떨어졌습니다. 결국 길을 잃고 절벽을 넘는 과정에서 추락사와 동사가 이어졌습니다. 칸나리 대위가 계속 이동할 것을 주장했지만 대대장은 날을 밝히자며 정지했고, 이로 인해 병사들은 극한의 추위 속에 쓰러졌죠. 그 결과 199명이 사망하고 11명만이 살아남았습니다.
이 ‘핫코다 산 참사’는 체감온도 영하 50도의 기상 악화가 직접 원인이었지만, 본질적으로는 인재(人災)였습니다. 불필요한 대규모 편성, 안내원 배제, 준비 부족, 지휘권 침해, 체면과 자존심에 치우친 결정이 사태를 키웠습니다. 반면 후쿠시마 탐사대는 소규모 인원, 철저한 준비, 전문 안내원 활용으로 단 한 명의 손실도 없었습니다.
조직에서 ‘수평적 문화’란 모든 구성원이 동일한 결정권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심리적 안전감을 바탕으로 논의 단계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되, 최종 결정권자의 결정을 존중하고 실행하는 문화입니다. 권한이 위임된 사람의 결정을 직급이나 영향력으로 억누르는 것은 혼란만 부릅니다.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은 다음과 같이 명확합니다.
미션과 목적에 집중할 것.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줄일 것.
충분한 정보 수집 후 판단할 것.
권한을 보장하고 간섭하지 말 것.
불확실성에 대비해 준비를 철저히 할 것.
조직이 제자리걸음을 한다면, 어쩌면 그 안에 ‘칸나리 탐사대’와 같은 문제가 숨어 있을지 모릅니다. 리더십과 구조를 점검하는 것이 생존의 시작임을 기억하세요. (끝)
제가 운영하는 출판사 '경다방'에서 신간이 출간됐습니다. 그동안 이 책 편집/교정하느라 좀 바빴습니다. <나의 소울넘버>라는 책인데요, 과거에 초판이 나왔다가 이번에 개정판으로 새로 인사를 드립니다. 아직 인쇄 전이라 지금은 예약판매 중입니다(7월 29일에 서점 배본 예정).
타로 혹은 수비학에 관심을 가진 분들, 타로 수비학이 아니더라도 삶의 조언을 구하고 싶은 분들께 추천하는 책입니다. 페친 여러분의 구매와 열독을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