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연구 결과는 우리의 기대를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연구자는 401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그릿과 성실성(Conscientiousness)의 관계를 면밀히 분석했습니다. 분석해 보니, 그릿이 학업성취(GPA)를 예측하는 힘은 거의 전적으로 성실성에서 나온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성실성과 겹치지 않는 그릿만의 고유한 부분은 학업성취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요? 연구자는 두 개념이 상당히 중복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릿이 측정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장기 목표에 대한 헌신'은 이미 심리학계가 수십 년간 연구해온 성실성의 핵심 특성입니다. 빅5 성격이론에서 성실성은 자기통제, 목표지향성, 계획성, 끈기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특성입니다. 결국 그릿은 성실성이라는 큰 우산 아래 있는 개념을 재포장한 것에 가깝다는 것이 이 연구의 결론입니다.
2017년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실린 대규모 메타분석에서도 그릿과 성실성의 상관계수가 0.84로 매우 높게 나타났습니다. 통계적으로 이는 두 개념이 거의 같은 것을 측정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릿의 두 하위요인 중 '노력의 인내'는 성실성과 거의 구별이 불가능하며, '흥미의 일관성'만이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는 점을 확인했죠.
이렇기에 그릿은 새로 발견된 개념이 아니라 기존 개념의 재포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케팅적으로 대성공한 브랜딩이라고도 말할 수 있죠. 그러니 우리는 그릿이라는 화려한 용어에 현혹되기보다는 자신의 성실성을 꾸준히 발전시키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그릿을 키워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나는 어떻게 하면 더 성실하게 목표를 추구할 수 있을까'라고 질문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자기계발 분야에서는 언제나 진리입니다. 자기계발에 관련된 책들은 이미 서점에 넘쳐나고, 그 대부분은 같은 내용을 다른 방식으로 포장한 것들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오래되고 검증된 진실을 꾸준히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릿하라!'는 말에는 뭔가 있어 보이는 것, 그것뿐입니다.
*참고논문
Minnigh, T. L., Sanders, J. M., Witherell, S. M., & Coyle, T. R. (2024). Grit as a predictor of academic performance: Not much more than conscientiousness.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221, 112542.
Credé, M., Tynan, M. C., & Harms, P. D. (2017). Much ado about grit: A meta-analytic synthesis of the grit literatur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13(3), 492–511.
* 추석 연휴 기간에 '유정식의 경영일기'도 쉬어 갑니다.
저도 푹 쉬고 10월 13일(월)에 찾아 뵙겠습니다.
즐겁고 행복한 추석 쇠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