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 여러분에게 새로운 프로젝트를 승인받기 위해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세요. 그 사람은 이 프로젝트가 반드시 도입되어야 하는 이유 15가지를 가득 정리한 PPT를 띄워두고 열변을 토하는 중입니다. 비용 절감, 경쟁사 대응 효과, MZ세대의 트렌드 부합 등 온갖 이유를 설명하는 그를 보면 여러분은 어떤 마음이 들까요? "근거가 아주 많아서 설득력이 있구만"일까요, 아니면 "음, 이 사람이 너무 나를 설득하려 하는데?"라는 의심이 들까요?
우리는 보통 근거가 많을수록 좋다고 믿습니다. 3가지 이유보다는 10가지 이유가 낫다고 말이죠. 하지만 누군가를 설득할 때 지나치게 많은 이유를 제시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애비게일 버그먼(Abigail Bergman) 연구팀은 3,000명 이상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5건의 온라인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특정 주장에 대해 어떤 그룹에는 적은 수의 논거를 제시하고, 다른 그룹에는 아주 많은 수의 논거를 제시했습니다.
결과는 상식과 완전히 달랐는데요, 논거를 많이 제시받은 사람들은 정보 제공자가 전문가라고 인정하면서도 "내 마음을 바꾸려는 의도나 목적이 좀 불순한 것 같다"고 의심했습니다. 전문성이 높다고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설득하려는 의도(Persuasive Intent)' 역시 너무 강하게 느낀다고 것이죠. "저 사람이 이 분야에 대해 많이 아는 건 알겠는데, 나를 어떻게든 구워삶으려고 무리수를 두는 것 같네? 뭔가 숨겨진 꿍꿍이나 맹점이 있는 것 아닐까?"라는 방어기제가 작동한다고 연구팀은 설명합니다.
서두의 상황에서 15가지의 장점을 나열하면 청자의 마음 속에는 "감추고 싶은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 게 아닐까?"란 의심이 싹트기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자질구레한 근거들은 과감하게 버리고 가장 중요하고 날카로운 1~2가지 이유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유리합니다.
설득은 '근거의 폭격'으로 상대의 항복을 받아내려는 공격이 아닙니다. 상대방이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했다는 주도권을 줘야 설득이 완성되죠. 여러분이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이메일을 쓴다면 가장 강력하고 거부할 수 없는 최상위 2개의 이유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덜어내 보세요. 여백의 미가 설득에도 적용된다는 걸 경험할 수 있을 겁니다. (끝)
* 참고논문 Bergman, A., Hussein, M. A., Catapano, R., & Tormala, Z. L. (2025). Fifteen Reasons You Should Read This Paper: How Providing Many Arguments Increases Perceptions of Both Expertise and Persuasive Intent.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01461672251366068. https://doi.org/10.1177/014616722513660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