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달간 팀원들과 밤낮없이 야근하며 긁어모은 방대한 데이터와 수십 장의 화려한 파이 차트가 담긴 100페이지짜리 두툼한 보고서. 그는 속으로 '이 정도 퀄리티와 분량이면 사장님도 내가 얼마나 이 프로젝트를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했는지 알아주시겠지?'라며 내심 칭찬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보고서를 훑어보던 CEO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합니다. "김 팀장, 내용이 너무 많아. 그래서 결론이 뭔가?"
우리는 흔히 윗분들에게, 특히 의사결정의 정점에 있는 CEO에게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상세히 보고하는 것이 그들의 올바른 판단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정보의 양'이 곧 '내 업무의 질'이라고 간주하는 것이죠. 보고서의 두께와 첨부된 백데이터의 양은 곧 내가 얼마나 일을 열심히 했는지 증명하는 근거로 여기죠.
행여나 CEO가 "이건 어떻게 된 건가?"라고 지엽적인 부분을 물었을 때 즉각 대답하지 못할까 봐 이를 방어하고자 보고서가 두꺼워지죠. 온갖 자잘한 데이터까지 모두 끌어모아 본인의 성실함을 과시(showing off)하려 들죠.
하지만 이는 철저히 '보고자 중심'의 이기적인 태도입니다. CEO는 회사에서 가장 시간이 부족하고 과부하에 시달리는 사람입니다. 그들에게 쏟아지는 방대한 정보는 시야를 넓혀주기는커녕, 무엇이 진짜 중요한 핵심 문제인지 가려버리죠. 결국 회사의 의사결정 속도를 늦추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만드는 가장 큰 방해물이 되고 맙니다. CEO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판단의 기준이 되는 '올바른 정보'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혁신 기업들은 무의미한 정보의 나열을 극도로 경계합니다. 아마존(Amazon)의 유명한 '6페이저(6-pager)' 회의 문화가 대표적입니다. 아마존에서는 아무리 복잡하고 거대한 사안이라도 6장 내외의 서술형 문서로 핵심적인 문제와 맥락, 선택지, 그리고 작성자의 명확한 제안을 담도록 합니다.
화려한 PPT나 쓸데없는 부가 데이터로 '일한 티'를 내는 것을 원천 차단하고, 의사결정자가 꼭 알아야 할 '핵심 신호'만 밀도 있게 전달하도록 만들죠. 리더는 쓸데없는 정보에 에너지를 뺏기지 않고 본질에만 집중해 빠르고 정확한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의사결정자의 어깨에 얹힌 인지적 짐을 얼마나 가볍게 덜어주느냐가 진짜 실력입니다. '일한 티만 내는 사람'에서 '결정을 끌어내는 핵심 인재'가 되려면 결정권자의 인지 에너지를 귀하게 여기기 바랍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