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럴까요? 직원들은 ‘누가 무엇을 아는가’라는 것에 대해 나름의 지도를 머릿 속에 가지고 있습니다. 고객의 사정은 김 과장이, 기술적인 제약은 이 대리가 잘 안다는 것을 알고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하곤 하는데요, 좋은 팀일수록 어떤 지식을 누구로부터 찾아야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동료에게 질문하면 답만 얻는 게 아니라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지도 배우게 되죠.
하지만 동료와의 대화를 줄이고 AI에게서 답을 구하면 그런 '지도(map)'은 갱신되지 않겠죠. 또한 동료의 경험과 판단 기준도 파악할 기회가 애초에 생기지 않습니다. 조사에 참여한 어떤 직원은 동료가 글에 대한 피드백을 자신 대신 AI에게 구하게 되면서 대화할 기회가 사라져 외로워졌다고 고백하기도 했다네요.
AI 의존도가 높아지면 도움을 요청받던 사람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도움을 요청받는 경험은 “이 팀에 내가 필요하다”는 증거가 되는데요, 다른 직원들이 자기 대신 AI에게 도움을 청하면 본인의 고유 역량이 '덜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갖기 마련이죠. 이렇게 관계가 점진적으로 약화되는 현상을 ‘릴레이션슬리핑(relationslipping)’이라고 부릅니다.
직원들이 동료 대신에 AI에게 의존하는 이유에는 조직의 책임도 있습니다. 연구진은 심리적 안전감이 낮은 팀의 구성원은 동료를 AI로 대체할 가능성이 두 배 이상 높다고 말합니다. 질문하면 무능하게 보이고, 도움을 주면 자신의 성과에 신경쓸 시간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조직(즉 심리적 안전감이 낮은) 조직이라면 사람보다는 언제나 사용자에게 '아부를 떠는' AI를 찾기 마련이겠죠.
물론 동료보다는 AI에게 의존하는 것이 항상 문제인 것은 아닙니다. 서로가 바쁠 때는 AI로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각자에게 유용하니까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도 AI만 붙잡고 있다면 그 조직의 팀워크는 십중팔구 위험상태에 있다고 판단해도 무방합니다.
AI를 활용하되 AI가 던져준 결과물에 의존하지 말고 본인이 답을 내기 위해 AI를 어떻게 사용했고 그 결과가 무엇인지를 동료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그래야 동료의 피드백을 받음으로써 어떤 분야를 누가 잘 아는지, 그사람의 경험과 노하우는 무엇인지, AI가 놓친 아이디어는 무엇인지를 포착할 수 있고 그걸 직원들 각자의 머리에 저장된 지도를 갱신할 수 있습니다.
“AI는 이렇게 제안했지만, 저는 이 부분을 바꿨습니다. 현장 경험상 놓친 점이 있을까요?”라고 동료에게 물어보세요. 서로의 전문성을 서로 연결하여 AI가 내놓은 결과물을 함께 판단할 수 있을 겁니다. (끝)